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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프롤로그] 일상다반사가 아닌 일상커반사

by 일상커반사 2024. 12. 20.

일상다반사

 

정의

 

일상에서 차와 밥을 먹는 것처럼 흔한 일.

 

 

오랫동안 일상다반사라는 말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이라는 뜻인 줄 알았다. '많을 다' 자가 아니라 '차 다'일 줄이야. 이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만연했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차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세상이 되었으니 '일상다반사'라는 말보다는 '일상커반사'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롤러코스터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지금은 가수 이효리의 남편으로 유명한 가수 이상순이 속했던 그룹 롤러코스터 덕분이다. 멜론 명반으로 지정된 롤러코스터 2집 '일상다반사'는 개인적으로 몇 안되는 통으로 듣는 앨범 중 하나이다. '너에게 보내는 노래', '힘을 내요, 미스터김' 등 라디오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앨범의 이름과도 같은 마지막 곡 '일상다반사'는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참 행복해.'라고 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노래한다.

 

 

일상이란 무엇일까?

 

2024년은 나에게 격변의 한해였다. 인생에서 가장 바닥을 찍은 시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기가 바닥인지 아니면 밑에 지하실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세상도 어지럽다. 40여 년 전에 부모님 세대에서 볼 수 있었던 계엄이 선포되었고 대통령은 탄핵되었으며 인생 처음으로 굿즈를 사고 덕질을 하고 있는 그룹 역시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국정감사에 참석하는 등 전례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운명이라 생각해 1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졌던 연애는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소재인 바람으로 끝이 났고 그에 따라 준비했던 커리어 전환도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평생 건강할 것만 같았던 부모님은 현재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 중이다.

 

몇 달 동안 쉴틈도 주지 않고 도미노처럼 풍파가 닥치고 있는 나에게 일상이란 무엇일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때는 소소했지만 지금은 큰 바람이 되어버린 나의 일상. 가수 장기하가 말했던 '나는 별일 없이 산다.'가 부러운 말이라는 게 와닿는 시기이다.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고 7층 병동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누군가는 휠체어를 타고 있고, 누군가는 머리에 붕대를 꽁꽁 싸매고 있으며, 누군가는 복대를 차고 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일상을 살아왔을 것이고 지금은 그 평범한 삶으로의 복귀를 누구보다 꿈꾸고 있을 것이다.

 

 

맥북-커피
병실의 햇볕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병원에서 쓰기 시작한 블로그

 

입원실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1박에 47만원에 달하는 1인실에 보호자로 상주하면서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가 집에는 상처의 흔적이 있어 호텔에서 집필을 하는 작가들을 얘기한 것처럼, 에어비앤비를 빌려서 글을 쓰는 한강 작가처럼 나는 병원 1인실에서 글을 쓴다. 일상을 떠나 있지만 그 누구보다 일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올 하반기가 정말 바닥이었다는, '낙상주의'가 붙어있는 바닥에 발을 딛고 이제 반등할 수 있도록 무언가 새로운 시작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수술을 앞두고서 "우리 딸, 잘 자."를 말하며 잠에 드는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따뜻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1인실

 

 

 

소소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는 이야기. 일상커반사.